230224__342/365_로마서 10:1-4

 

[ 열성, 올바른 지식, 하나님의 의 ]

 

천하의 바울 선생님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것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 무슨 소원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도 소원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품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바로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10:1).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이스라엘 국기? 이스라엘의 국기는 19481028일에 제정되었다고 해요. 하얀색 바탕 위아래에는 파란색 가로줄 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파란색 가로줄 무늬 사이에는 파란색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지요. 정삼각형 두 개를 아래위로 포개놓은 그림입니다.

또 무엇이 생각납니까? 이스라엘의 위치? , 중동의 화약고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주위의 이슬람 국가로부터 항상 견제를 받는 곳에 있지요. 마치 우리의 한반도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 믿는 이들은 성경과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웁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 민족도 아닌 남의 나라 역사를 배워서 무얼 하느냐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 역사든 그것은 우리(믿지 않는 이들 포함)에게 교훈을 줍니다.

바울 선생님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일까요? 그는 그들[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다라고 증언합니다(10:2a). 그렇지요.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11:1-9)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12:1-3).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시작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주전 586년이었지요. 그리고 2,500여 년이 지나 1948년에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35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250년도 아닌 2,500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지구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예수님과 바울 당시를 계산하더라도 약 600년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성이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나라를 잃은 뼈아픈 경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우리말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비슷할까요? 하여간 그들의 열성이 대단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글(로마서)을 쓴 바울 선생님도 유대교에 얼마나 큰 열성을 보였습니까?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메시아를 만난 후, 전도와 선교에 투신한 그의 열성은 이미 그의 DNA에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 선생님은, 자기도 이스라엘인이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해 냉정하게 평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10:2b) 바울 선생님은 열성과 올바른 지식을 나란히 두고 있습니다. 열성은 올바른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 이스라엘은 바탕이 든든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모든 일이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0:2, MSG).

열성만 있고 올바른 지식이 없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열성이 없지만, 지식만 가득한 것도 위험하겠지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동한 지식인들이 우매한 자들을 총알받이로 앞세웠던 일은 역사적 사실이지요. 선동가들은 지식(올바른 지식은 아니었지만)만 있었지, 목숨을 내거는 열성은 없었습니다. 반대로 우매한 이들은 열성만 있었지, 올바르기는커녕 바르지 않은 지식마저도 없었습니다. 선동가들의 사냥감이 되기에 딱 알맞습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열성과 함께 올바른 지식이 있었습니다. 부흥을 주제로 마틴 로이드 존스는 대단하고 올바른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부흥의 열성을 설교했습니다(부흥, 마틴 로이드 존스, 1987). 그 외에도 대부분 위대한 선각자들은 열성과 올바른 지식의 균형을 맞춘 이들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매우 꺼렸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성경도 하나님을 알아라!’라는 당부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지식일까요? 바울 선생님은 열성과 올바른 지식을 화두로 던진 다음 하나님의 의를 언급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10:3) 이렇게 바울 선생님은 열성과 올바른 지식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의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일까요? “그들[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제 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10:3, 공동번역)

그렇습니다. 최소한 로마서 10:2-3에 따르면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아는 것’, 하나님의 의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 속에 나타나며,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1:17a) 그리고 바울 선생님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빨리, 숨도 쉬지 않고 구약을 인용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한 것과 같습니다.”(1:17b; 2:4)

그러나 문제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어떤 믿음이냐는 것이지요. 이제 바울 선생님은 열성, 올바른 지식, 하나님의 의를 거쳐 그리스도로 다가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주셨습니다.”(10:4)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원래 오늘 글은 10:3자기의에 관해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주옥같은 설교와 서적이 있고, 또 제가 자기의에 관해 쓴다면 또 하나의 나의 의를 내세워 여러분의 귀와 눈을 더럽히는 셈이 되니 그만두었습니다. ‘자기의로 똘똘 뭉친 제가 자기의운운하는 게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짧은 문단(10:1-4)에서 바울 선생님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스라엘의 구원 열성과 올바른 지식 하나님의 의 복음 메시아로 이어지는 흐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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