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1_화_339/365_고린도후서 10:1, 10✝
[ 신언서판(身言書判) ]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인물을 선택하는 데 표준으로 삼던 조건으로, 곧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지요. 그런데 신수(身手, 용모와 풍채)가 훤하더라도 말씨가 형편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한편, 말은 잘하지만, 글이 형편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요. 글을 화려하게 잘 쓰지만,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역시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조건을 갖출 수는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든 재능을 독점한 셈이지요(정말 부럽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 선생님을 어떻게 평할까요? 믿지 않는 이들은 그를 어떻게 평할까요? 고린도 교회 공동체인지 아니면 공동체 밖의 사람들인지 불분명하지만, 바울 선생님에 대한 평이 있습니다. “너희[고린도 교회 형제자매들]를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고후 10:1a) 개역개정에 따르면 이 평은 바울 선생님 자신이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번역본은 좀 다릅니다. “내가[바울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는 여러분에게 유순하나, 떠나 있을 때는 여러분에게 강경하다고들 합니다.”(10:1b, 새번역)
아마 바울 선생님은 자신에 관한 이런 평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바울 선생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바울 선생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청하는 것은, 내가 가서 여러분을 대할 때에 강경하게 대해야 할 일이 없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10:2a) 고린도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을 때 강경했던 바울 선생님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에 경고성의 편지를 보낸 게 고린도전서이지요. 그러나 바울 선생님에게는 고린도 교회에 강경하게 대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는 공동체의 여러 문제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유명한 사랑 찬가(고전 13장)가 기록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 공동체에 강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고후 10:2-9). 한마디로 주께서 바울 선생님에게 주신 권위는 그들을 세우라고 주신 것이라는 게지요(10:8).
또 하나의 평이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10:10) 이 역시 고린도 공동체 내의 평인지 밖의 평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확실한 것은 바울 선생님의 편지(신약 성경의 거의 절반)와 사도행전을 읽으면 그의 편지가 무게가 있고 힘이 있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게지요.
바울 선생님의 질병이 무엇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의 몸이 약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12:7-10). 질병까지는 아니지만, 전승에 따르면, 그는 대머리였다고 하기도 해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대머리를 얕잡아보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말주변이 변변치 못하다는 점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랬다면, 그가 그렇게 많은 교회를 세웠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수 있었을까요? 물론 바울 선생님 뒤에서 일하셨던 분은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바울 선생님을 통해 사랑의 사귐을 공동체에 불어넣으셨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바울 선생님은 당시 최고 학자 중 하나입니다. 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 철학자들 및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하는 장면을 보십시오(행 17:16-31). 물론 그들 중 더러는 비웃고 떠나기도 했지만, 몇몇은 바울 편에 가담해 신자가 되었습니다(17:32-34). 누가 그러더군요. 예수님도 열두 제자 중 하나는 건지지 못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런 바울 선생님의 편지입니다. 그의 편지가 무게도 있고 단호하다는 점은 공동체의 형제자매들이나 밖의 사람들 모두 인정합니다. 그의 말이 별것 아니라면, 그의 편지도 별것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어떤 글을 읽으면 무게감을 느낍니까? 솔직히 저에게 성경은 어렵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아직 잘 받지 못해서일 겁니다. 저의 지식(과 지혜)이 모자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책을 읽곤 합니다. 비유하자면, 성경은 주교재(교과서)이며 신앙 서적은 참고서라고나 할까요. 어려운 성경을 풀어서 설명한 책을 읽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물론 그런 책에는 글쓴이의 주관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중요한 점은 바울 선생님의 편지에 무게가 있고 힘이 있다는 겁니다. 비록 몸이 약하지만, 그는 그 약함을 오히려 자랑합니다(고후 12:9-10). 그의 말주변이 없다는 평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우리는 누구의 글에서 무게감과 힘을 느낍니까? 제가 읽은 책의 저자 중에서는 척 스윈돌(Charles R. Swindoll)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을 겁니다.
아랍 국가에 선풍적인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대장금’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장금이 의녀 수련을 마치고 스승으로부터 마지막 조언을 받는 장면입니다.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의원은 똑똑하다고 하는 게 아니다. 의원은 첫째도 겸손해야 하며, 둘째도 겸손해야 한다. 세상이 기다리는 의원은 오직 겸의(謙醫)뿐이다. 이것을 너의 뼈에 새기고 피에 흐르도록 해라.”
무게감이 있고 힘이 있는 바울 선생님의 글(과 모든 성경, 그리고 여러 신앙 서적)이 저의 뼈에 새겨지고 피에 흐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글이 나의 뼈에 새겨지고 피에 흐르자면 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과 피를 흘리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고통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지요. 그러나 일단 새겨지고 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롬 10:17). 바울 선생님의 글(과 말)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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