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6__334/365_고린도전서 1:22

 

[ 표적, 지혜, 그리고 복음 ]

 

불후의 명작 벤허(Ben-Hur)’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벤허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로마의 노예로 끌려갑니다. 로마 장교가 죄수들을 이끌고 어떤 마을(아마 나사렛)에 다다랐을 때, 한 우물가에 잠시 멈춥니다. 물을 마시게 하려는 게지요. 그런데 다른 죄수들에게는 물을 주지만, 벤허에게는 물을 주지 않습니다. 장교가 타고 가는 말에게도 물을 주지만, 벤허에게는 한 모금조차도 주지 않습니다. 벤허는 바닥에 쓰러져 도와주소서!”(God, help me!)라고 신음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또는 필요한)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찾지 못하면 어떤 절대자에게 그것을 요구하기도 하지요. 유대인인 벤허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또는 돈)을 지닌 자에게 붙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도 합니다(물론 실패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구하고 찾는 것이 다를 수도 있지요.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는 아닐 겁니다.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전 1:22)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 선생님이 읽은 성경(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베풀어주신 수많은 표적(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홍해를 가른) 기적이지 싶습니다. 그 외에도 엘리야를 포함해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도 기적을 베푸셨지요. 따지고 보면 작고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이, 비록 바빌론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기적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 요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징(기적)을 보았으면 합니다.”(12:38)라고 요구했듯이, 유대인은 생활에서 하나님의 신성하고 거룩한 기적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만 그랬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나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것을 자기 신앙의 근거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말이지요. , 오해하지 마십시오. 때에 따라 기적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적을 기쁘게 보여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반면에 그리스인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래서 철학의 출발이 그리스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철학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그리스 철학까지 올라가지요. 우리의 입에 흔히 오르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단순한 수학자가 아닙니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등을 다시 떠올려보십시오. 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무엇이나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17:21). 그 정도로 그들은 지혜를 사랑[철학(philosophy)]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이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녹아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그 철학(지혜)을 열심히 배웁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철학을 한다고 하면 왠지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지성인 중 하나였던 바울 선생님은 표적(기적)과 지혜가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고전 1:23a).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인의 눈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비위에 거슬리는 것입니다(1:23b). 지혜를 찾는 그리스인의 눈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인다는 게지요(1:23c). 그래서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세상의 지혜자()가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예수[그리스도(메시아)]께서 표적과 지혜를 능가하신다고 단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표적, 기적, )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1:24b). 철학자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기때문입니다(1:25a).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약하심(사실 유다가 멸망했을 때 이런 의문을 품은 유대인이 많았습니다)이 사람보다 강하기때문입니다(1:25b). 하나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이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 못 박힌 예수는 유대인의 눈에 아무런 능력(표적, 기적, )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그리스인의 눈에 아무런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부활). 하나님의 기적과 지혜를 보여주는 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외에 그 누가(또는 그 무엇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능력(표적, 기적, ,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능력만 쫓아가면 이른바 신비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혜만 쫓아가면 인간의 왜곡된 이성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능력과 지혜의 현상에 만족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능력과 지혜 뒤에 있는 원천인 하나님께 시선을 맞춥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