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3__331/365_사도행전 17:11

 

[ 너그러워서 ]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17:11).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믿는 이들은 예배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간절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이 더 너그러웠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전 우리말 성경은 그들이 더 신사적(紳士的)이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먼저 베뢰아를 검색해보았습니다. 베뢰아(Beroea)는 데살로니가 서쪽 80지점 와다르(Wardar) 평야에 있는 마게도냐 주()의 한 성읍이었습니다. 북쪽으로 소아시아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가 통과하는데, 2차 선교여행 당시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의 폭동에 직면한 바울 일행이 이 도로를 이용하여 베뢰아로 피신하였습니다(17:10, 라이프성경사전).

다른 번역본을 보니,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새번역) 또는 그곳 유대인들은 마음이 트인 사람들이어서”(공동번역)라고 번역합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개역개정)은 십중팔구 유대인일 겁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가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내친김에 영역본도 살펴보았습니다. “more open-minded”(NLT), “more noble-minded”(NRSV) 등으로 번역합니다.

신사(紳士)’는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새번역의 고상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도 합니다. ‘고상(高尙)하다는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는 뜻이지요. 영역본의 “noble”과 비슷합니다. 원래 이 낱말은 명문가(high born)’, 최상류 가문 출신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열린(open)’, ‘관대한, 아량 있는(tolerant)’, 또는 후한, 너그러운(generous)’ 성품을 의미하게 되었다는군요. 그렇게 보면 개역개정의 너그러워서도 이해할 만합니다.

모든 낱말을 적용해보면 이렇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 사람들보다 더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가 바르고, 고상하고, 마음이 열려있으며, 아량이 넘치고, 너그러웠다.” 사람의 성품에 좋은 낱말을 죄다 끌어 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최상류 가문 출신이라는 원뜻도 있지 않습니까? 이는 다음 구절과 짝을 이룹니다. “이리하여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또 그리스 귀부인들과 남자들 가운데서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17:12, 공동번역)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이 있습니다. 심리학자가 아니므로 성품, 성격, 기질, 인격 등의 차이점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더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가 바르고, 고상하고, 마음이 열려있으며, 아량이 넘치고, 너그러운지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11에 따르면 이런 성품(성품으로 통일하겠습니다)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꺼이(새번역) 그리고 열심히(공동번역) 말씀을 받는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바울의 말이 사실인지 날마다 성경을 상고(연구)하는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나에게는 말씀을 받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기꺼이 그 말씀을 받아들입니까? 열심히 그 말씀을 받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더 점잖아야 합니다. 교양을 더 쌓아야 합니다.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고상한 생각과 말을 꾸준히 연습해야 합니다. 닫힌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형제자매에게 아량을 베풀고 너그러워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타고난 성품이 점잖지 않다고, 교양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고, 예의를 배우지 못했다고, 고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좁은 마음으로 아량을 베풀지 못한다고, 너그럽기는커녕 인색하다고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께서 이끌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연구)하며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1:5).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너그러워질기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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